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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의 야구여행] "야구게임 카드에서 봤던 분이 우리 감독님"…'레전드 타격왕' 박종호의 수구초심과 모래론

작성일: 2021.11.04 09:05 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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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호 백송고 신임 감독이 3일 고양장항야구장에서 선수들과 상견례를 하고 있다. ⓒ고양, 이재국 기자
[스포티비뉴스=고양, 이재국 기자] “오~ 수비 잘하는데? 내가 기대치를 너무 낮게 잡고 왔나?”

3일 경기도 고양시 고양장항야구장. 새로 부임한 감독은 처음 만난 선수들에게 칭찬부터 시작한다. 긴장한 눈빛으로 새 감독을 맞이한 선수들은 그제서야 굳은 표정이 풀리며 미소를 머금는다.

KBO 최초이자 유일한 스위치히터 타격왕(2000년 0.340) 출신, 한국야구 최초 올림픽(2000년 시드니) 메달리스트, 39경기연속안타 아시아 신기록(2003~2004년) 보유자, 골든글러브를 3회(1994년 LG·2000년 현대·2004년 삼성) 수상한 레전드 2루수, 한국시리즈 챔피언 반지 6개나 낀 우승 제조기….

이쯤 되면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누구인지 알아차릴 듯하다. KBO리그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박종호(48) 전 롯데 수석코치다. 이날은 백송고 감독으로 선임된 뒤 선수들과 상견례를 하는 날이었다.

“야구게임 카드에서 봤어요.”

“얼마 전까지 TV로만 뵙던 분인데 이렇게 직접 만나니 신기해요.”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얼마나 대단한 분이셨는지 알게 됐어요.”

백송고 선수들은 KBO 레전드가 새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한껏 고무돼 있었다. 팀의 주축인 2학년들은 2004년생으로 박종호 감독이 39경기연속안타를 작성할 당시 태어난 선수들이다. 당연히 박 감독의 현역 선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다. 그러나 '선수 박종호'의 기록과 명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익히 알고 있었다.

내년 시즌 새롭게 주장을 맡게 된 외야수 이선명(2학년)은 “감독님께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팀원들을 이끌고 감독님을 따라가고 싶다”면서 “야구를 더 잘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박종호 감독은 “아마추어 지도자는 처음이라 신인이 된 기분이다. 나도 배워가면서 가르치겠다. 어린 친구들을 보니 30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 박종호 백송고 신임 감독 ⓒ고양, 이재국 기자
-선수들과 상견례를 하니 기분이 어떤가?

“이제 고교 감독이 됐다는 게 조금 실감나는 것 같다. 성남고등학교 졸업하고 1992년 LG에 입단했으니 딱 30년 만에 고등학교 야구로 돌아온 거다.”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

“3주 전에 롯데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해서 구단을 나왔다. 계약은 11월까지 돼 있지만 롯데 구단에서 미리 배려를 해준 셈이다. 그러는 사이에 지인이 백송고 감독 모집 공고가 떴다고 알려주더라. 그렇잖아도 언젠가는 아마추어로 돌아가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류 작성해서 지원서를 냈다. 3일 후에 면접을 봤는데 덜컥 합격했다.”

-면접을 잘 본 건가?

“하하하. 그건 잘 모르겠다. 면접 때 야구관과 소신을 자신 있게 얘기했다. 그런데 5명이 면접을 봤다고 하더라. ‘백송고에는 이미 누가 가기로 돼 있다더라’ 등등 이런저런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그래서 솔직히 난 안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 계신 선생님께서 며칠 전에 전화로 합격했다고 알려주시더라. 처음엔 깜짝 놀랐다. 실감이 나지 않고 긴가민가했는데 ‘그래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이날 상견례를 하는 자리에 백송고 체육교사 2명이 나와 박 감독을 맞이했다. 여교사로서 백송고 야구부장을 맡고 있는 권성연 선생님은 “사실 우리는 감독 모집 공고 때 접수된 서류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프로야구 레전드 아니신가”라면서 “면접 점수가 굉장히 높게 나왔다. 교장, 교감선생님뿐 아니라 이사장님도 매우 흡족해 하신다. 성적은 어떨지 몰라도 우리 선수들이 선진화된 시스템과 야구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성적은 보너스고”라며 웃었다.

신한빛 선생님은 서울고와 홍익대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해 야구부와 야구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1학년 포수 이민서가 지나가자 “이 친구는 입학할 때 전교 1등으로 들어왔는데 지금은 야구를 하면서도 전교 2등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공부도 잘한다”고 소개하는 등 선수 한 명 한 명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박 감독이 포수 장비를 차는 이민서에게 “얼굴 딱 보니 공부도 잘 하게 생겼네”라고 칭찬하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 백송고 박종호 감독은 2004년 39경기연속안타로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했다. 왼쪽은 당시 KBO 이상국 사무총장, 오른쪽은 삼성 신필렬 사장 ⓒ삼성라이온즈
-프로에만 있다가 아마추어 지도자로 돌아서기 쉽지 않았을 텐데.

“3년 전에 LG에서 나와 상무 코치로 갔는데 거기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뭔지, 내가 즐거운 게 뭔지 생각해보니 어린 선수들 가르칠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더라. 그런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무 있을 때 아마추어 지도자를 할 수 있는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언젠가는 아마추어 선수들을 가르치고 싶었는데 지금 딱 그 시기가 온 것 같다.”

-프로에서 지도자를 더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할 만큼 하지 않았나. 누군가는 프로 감독까지 해야 성공한 야구인생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다. 난 고등학교 졸업할 때 몸무게가 68㎏밖에 나가지 않았을 정도로 왜소했다. 그런데 프로에서 타격왕도 해봤고, 39경기연속안타도 쳐봤고, 수석코치까지 하지 않았나. 이만하면 성공했다. 정치인이 꼭 대통령 돼야만 행복한가. 감옥에도 가고 불행할 수도 있다. 프로 감독이라고 모두 행복한가. 겉만 화려할 뿐이다. 스트레스가 심하고 감독에서 잘리고 나면 오히려 할 게 없으니 더 불행해질 수도 있다. 생각의 차이다.”

-프로 선수보다 지도하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런 점도 있겠지만 선수들이 더 순수하니까 장점이 있다. 나도 고교 시절 그랬지만 기술적으로 정립이 안 된 선수들, 기본기가 갖춰지지 않은 선수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하나씩 도와주고 싶다.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들은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을 하는지도 가르쳐줄 수 있고.”

-멘탈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건가?

“아까 선수들과 상견례를 하면서도 얘기했지만 멘탈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심판 판정 하나에 어린 선수들은 멘탈이 크게 흔들린다. 감정과 생각을 구분해야 한다. 어린 선수일수록 감정이 많이 개입하는 성향이 있다.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

“나중에 선수들한테 얘기해주겠지만, 어린 선수들은 성공만 생각하지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난 선수 시절을 뒤돌아보면 기복이 크게 없었다. 타석에서 안타 못 치면 다음 타석에서 치면 된다고 생각했다. 타석에서 못 친 걸 수비까지 가져가면 안 된다. 그런 것을 잘 이해시키고 준비시키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

▲ 백송고 박종호 신임 감독이 선수의 타격을 지켜보고 있다. 타자는 kt 위즈 강백호 타격폼을 따라 해 '리틀 강백호'로 불리며 화제를 모은 바 있는 3학년 김은천.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김은천은 1~2학년 위주로 출전하는 봉황대기까지 뛰겠다는 열의를 보이고 있다. ⓒ고양, 이재국 기자

-야구부 역사도 짧고 전력이 약한 편이라 변방의 팀으로 평가받는다.

“오히려 더 잘됐다고 봤다. 선수들이 성장할 여지가 더 크다. 함께 키워 가면 더 보람이 있을 것이다. 수비하는 것 보니까 의외로 괜찮더라. 나도 백송고 전력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고 기대치를 너무 낮춰 잡고 온 것 같은데 생각보다 좋더라(웃음).”

-선수들 타격하는 부분을 보고 뭔가 얘기를 하던데.

“수비는 괜찮은데 다만 몇몇 선수를 빼고는 힘이 부족한 것 같다. 하체들도 약해 보인다. 나무방망이를 쓰니까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더 해야 한다. 힘이 있어야 기술도 먹힌다. 강한 타구를 날려야 수비를 뚫을 수 있다. 나도 프로에 들어갈 땐 68㎏이었다. 파워가 생기면서 타격왕도 할 수 있었다.”

-고교 선수들을 통솔하는 게 쉬운 건 아니다.

“손으로 모래를 꽉 쥐면 흘러내리지 않는다. 너무 느슨하게 쥐면 다 흘러내린다.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것은 모래를 쥐는 것과 같다. 과거엔 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가 무서워 눈치 보며 야구를 했다. 지도자가 강압적으로 가르치면 선수들의 야구가 즐겁지 않다. 훈련 시간이 많다고 기량이 느는 것도 아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분배하고 프로그램을 잘 짜서 훈련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이 운동장에 즐거운 기분으로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겠다.”

-성적에 대한 부담도 있을 텐데.

“프로도 그렇지만 아마추어도 성적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돈을 좇다 보면 돈을 잡을 수 없듯이 성적만 좇다 보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과정이 중요하다. 우선 과정을 만드는 데 집중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선수들이 잘 성장해서 프로에 가서 한 획을 긋는 선수가 나오면 좋겠다. 그러나 모두 프로에 갈 수는 없다. 대학 가는 선수도 있다. 야구를 그만두더라도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돼야 한다. 인성도 중요하다. 인성이 안 된 선수는 프로에서도 금세 도태되더라. 그런 부분을 도와주고 싶다. 프로에서 30년간 배우고 익힌 것들을 잘 전하도록 하겠다.”

▲ 새로운 감독을 맞이한 백송고 선수들이 다시 힘차게 뛸 채비를 하고 있다. ⓒ고양, 이재국 기자
백송고 야구부는 2015년에 창단됐다. 지난해 청룡기고교야구대회 16강전에서 선린인터넷고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이 전국대회 최고 성적. 프로 선수로는 전 메이저리거 조진호의 조카인 투수 조영건이 2019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에서 키움 히어로즈에 지명된 것이 최초다. 이후 2021년 두산에 2차 7라운드 선택된 투수 강원진과 이번에 SSG에 2차 2라운드 지명된 투수 김도현이 뒤를 잇고 있다.

현재 봉황대기고교야구가 한창이다. 백송고는 5일 첫 판에서 전통의 강호 북일고와 만난다. 백송고 4대 감독이 된 박종호 감독은 이 대회가 끝난 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정식 등록될 예정이어서 덕아웃에 들어가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지켜볼 예정이다.

근본을 잊지 않는 수구초심(首丘初心). 30년간 입어온 화려한 프로 유니폼을 벗고 까까머리 시절의 추억이 담긴 고교야구 무대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성실과 근면으로 프로야구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박종호 감독은 야구인생의 스위치 버튼을 눌렀다. 새로운 설렘과 기대를 안고 백송고 야구부와 자신의 미래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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