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수원, 고봉준 기자] 굳이 야구계의 전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재 롯데 자이언츠를 둘러싼 기류는 그리 긍정적이지가 못하다. 4월 상승세의 신기루 사이로 가려졌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승률은 곤두박질치고 있고,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고 있다.
이러한 롯데의 현주소는 수도권 원정 9연전의 막바지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중이다.
롯데는 8일과 9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전에서 내리 패했다. 1차전에선 선발투수 찰리 반즈의 호투와 7회초 터진 안중열의 좌월 솔로홈런을 앞세워 2-1로 앞섰지만, 7회 수비에서 아쉬운 장면이 연달아 나오며 4점을 내줘 결국 3-6으로 졌다.
역전패의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롯데는 경기 초반까지 비등하게 싸웠다. 그러나 1-2로 밀리던 7회 2사 1·2루에서 허망하게 1점을 내주면서 1-3으로 패했다.
이렇게 최근 3연패 늪으로 빠진 롯데. 그런데 짚고 넘어야 할 문제는 결과가 아니었다. 패하는 과정이 연달아 의문부호를 남겼다.
먼저 1차전. 6회까지 1실점 호투하던 반즈가 7회 들어 흔들렸다. 선두타자 앤서니 알포드에게 중전안타를 맞은 뒤 박병호에게 유격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내주면서였다.
실점 위기로 몰린 반즈는 장성우의 희생번트 때 실책을 저질렀다. 3루를 한 차례 쳐다본 뒤 공을 1루로 뿌렸는데 이 송구가 빗나가면서 무사 만루를 허용했다.
2-1로 앞서던 롯데로선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 1점을 막기 위해서라면 전진수비가, 더 많은 아웃카운트를 늘리기 위해선 정상수비가 가동돼야 했지만, 롯데 벤치의 판단은 예상을 깼다. 2루수 안치홍이 2루를 넘어 유격수 방면으로 치우쳐 선, 실험적인 수비 시프트를 선택했다.
물론 확률을 기반으로 한 작전이었겠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후속타자 황재균의 타구가 ‘하필’ 안치홍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수비 포메이션이었다면, 유격수와 2루수 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가 가능했던 상황. 그러나 안치홍의 2루 송구를 받아줄 수비수는 없었고, 자신 역시 베이스를 찍기에는 거리가 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1루로 공을 던져야 했다.
보기 힘든 무사 만루 시프트의 나비효과는 계속됐다. 1점을 뽑아 2-2 동점을 만든 kt는 김민혁의 고의4구와 오윤석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1점차 리드를 잡았다. 이어 심우준의 2타점 좌전 적시타로 승리의 쐐기를 박았다.
이제는 모든 구단에서 적용하고 있는 수비 시프트의 목적은 하나다. 인플레이 아웃 확률 증대. 그런데 여기에는 구성원들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아웃이 돼야 할 범타가 수비 시프트의 빈 곳을 틈타 안타가 됐을 때, 투수나 다른 야수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미 전임 허문회 감독 체제부터 다양한 수비 시프트를 활용하고 있는 롯데는 ‘전반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 십여 년간 약점으로 꼽힌 내외야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선 수비 시프트가 해법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평범한 타구가 안타로 둔갑하고, 이를 통해 결정적인 점수를 내주는 경기가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 시즌 최하위까지 떨어진 0.653이라는 수비효율(인플레이 타구 중 아웃으로 처리된 비율)이 현재 상황을 대신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내부의 걱정스러운, 내지는 갸우뚱한 시선은 이미 벤치 이곳저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처럼 수비 시프트가 이슈로 떠오른 1차전의 여파가 채 가실 새도 없이 2차전에선 또 다른 수비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멀티 내야수의 결정적 실책이었다.
문제의 장면은 롯데가 1-2로 밀리던 7회 나왔다. kt 선두타자 심우준이 김도규로부터 볼넷을 얻어낸 뒤 조용호가 좌전안타를 때려 무사 1·2루를 만들었다.
이어 김민혁이 좌익수 직선타로 물러나자 롯데는 마운드를 핵심 셋업맨 최준용으로 교체했다. 1점 차이로 지고 있었지만, 이 위기만 넘긴다면 충분히 역전을 도모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믿음을 안고 등판한 최준용은 기대대로 알포드를 삼진으로 처리했다. 그러면서 7회 종료까지 아웃 하나만을 남겨놓았다.
최준용의 구위는 더욱 위력을 떨쳤다. 후속타자 박병호와 승부에서도 1볼-2스트라이크로 우위를 점했다. 그리고 이어진 4구째 직구. 박병호가 받아친 공은 내야 높게 뜨고 말았다.
평범하게 잡을 수 있는 타구. 그러나 여기에서 모두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를 롯데 2루수 이호연이 잡지 못했다. 낙구 지점을 쉽게 포착하지 못한 이호연은 한동안 2루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결국 공을 놓치고 말았다. 이 사이 2루 주자 심우준이 홈을 밟았고, 이는 이날 경기의 승부처가 됐다.
물론 이 실책의 책임은 당연히 이호연에게 있다. 프로 내야수라면 쉽게 처리해줘야 할 뜬공을 포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점을 넓히면 이 역시 롯데의 지향점과 궤를 같이한다.
이날 실책을 저지른 이호연은 올해 처음 풀타임 시즌을 보내고 있는, 아직은 경험이 적은 내야수다. 2018년 데뷔 후 지난해까지 단 8경기만을 뛰다가 올해 5월 1군으로 올라온 뒤 42경기를 소화 중이다.
이제 막 1군 무대가 익숙해지기 시작한 이호연은 그런데 현재까지 내야의 모든 포지션을 돌고 있다. 3루수부터 유격수, 2루수, 1루수까지 글러브와 미트를 여럿 챙겨야 하는 형편이다.
이호연이 이렇게 내야 순회공연을 펼쳐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롯데의 수비진이 안정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전 유격수가 ‘여전히’ 없는 가운데 3루수 한동희와 1루수 정훈이 부상으로 오랜 기간 자리를 비웠고, 이대호 역시 자주 지명타자로 쉬어야 하는 상황이라 이호연과 같은 멀티 내야수들이 이곳저곳 빈틈을 메우고 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2루수로 나온 이날 결정적인 실책을 범했다.
그런데 이날 이호연의 미스는 어딘가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들게 한다. 지난해 내야수와 외야수를 번갈아 보던 신용수. 백업 야수로 기대를 모으던 신용수는 내외야에서 미숙한 수비를 여러 차례 보였고, 결국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에서 방황하다가 성장이 늦어졌다.
지난 몇 년간 롯데는 전력만 놓고 본다면 당장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도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올 시즌 순위는 어느새 공동 6위까지 떨어졌고, 중위권과 격차는 계속해 벌어지고 있다.
이미 4년 연속 가을야구 무대로 초청받지 못한 롯데.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30년이 지난 2022년은 다시 묻고 있다. 지금 롯데의 야구는 어디로 가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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