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디아즈, 앤더슨 실바 대비해 킥복싱 세계챔피언과 훈련
김동현의 '닥치고 돌진'에 허를 찔린 에릭 실바 '임기응변도 중요해'

▲ 미르코 크로캅(오른쪽)과 주니어 도스 산토스 ⓒ Gettyimages
[SPOTV NEWS=이교덕 기자] 미르코 크로캅에게 종합격투기 첫 KO패를 안긴 파이터는 타격가가 아니었다. K-1에서 잔뼈가 굵은 크로캅이 레슬러 케빈 랜들맨의 펀치에 실신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04년 4월 '프라이드 헤비급 그랑프리 16강전'에서 랜들맨은 1라운드 1분57초 만에 크로캅을 잠재워 대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랜들맨이 11년 만에 승리의 비결을 밝혔다. 최근 한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리델과 태그팀을 결성했었다"고 농담을 섞어 말했다. '아이스맨' 척 리델은 UFC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타격가다. 2001년 옥타곤에서 랜들맨에게 KO패를 선사했지만, 이후 친해졌다.

랜들맨은 크로캅을 상대로 이렇다 할 전략이 없었다. 왼손잡이 타격가와 어떻게 싸워야하는지도 몰랐다. 싸우던 대로 싸우려 했다. 이때 지원군을 자청한 사람이 리델이었다. 랜들맨은 "리델과 함께 6일 동안 훈련했다"며 "그가 크로캅에 맞서기 위한 자세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리델이 크로캅을 흉내 내며 스파링상대로 나섰고 랜들맨이 속성과외를 통해 카운트펀치를 장착했는데, 이것이 실전에서 제대로 먹힌 것이다.

종합격투기 파이터들의 경기스타일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상대가 결정되면 가장 먼저 과거 경기영상을 돌려보며 스타일을 분석한다. 그 다음 맞춤 전략과 전술을 세운다. 그리고 실전에 준하는 스파링을 통해 이것을 몸으로 익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상대와 비슷한 신체조건과 경기스타일을 지닌 '스파링 파트너'의 존재다. 최적의 파트너가 있다면 본고사에 가까운 모의고사를 매일 볼 수 있다.

오는 25일(한국시간) 'UFC on FOX 14' 메인이벤트에 출격하는 앤소니 존슨은 명문팀 중 하나인 블랙질리안 소속이다. 여기엔 라샤드 에반스라는 톱클래스 파이터가 있어 강도 높은 스파링을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존슨은 이번 경기를 앞두고 콜린 조지라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파이터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콜린 조지는 200cm가 넘는 장신, 원거리 타격이 좋은 이번 상대 알렉산더 구스타프손(193cm)의 대역이었다.

같은 대회에 출전하는 댄 헨더슨은 미들급 랭킹 5위 루크 락홀드를 자신의 체육관이 있는 캘리포니아주 테메큘라로 불렀다. 최근 5경기 1승 4패로 위기에 몰린 헨더슨이 넘어야 하는 상대는 신장 185cm에 타격과 그라운드의 균형이 잡힌 웰라운드 파이터 게가드 무사시다. 헨더슨은 190cm의 락홀드가 무사시와 흡사한 스타일이라고 판단했다. 흔쾌히 캠프에 합류한 락홀드는 무사시로 변해 헨더슨과 스파링했다.

닉 디아즈는 2월 1일 UFC 183 메인이벤트에서 앤더슨 실바와 맞선다. 최강의 타격가 실바를 상대하기 위해 최강의 타격가가 파트너로 필요했다. 더군다나 이번 경기는 자신의 체급 웰터급이 아닌 실바의 체급 미들급 경기다. 그래서 훈련캠프에 초청한 파이터가 84승 1무 6패의 미들급 킥복서 아르템 레빈이었다. 레빈은 러시아 출신으로 190cm의 장신인데다가 현재 세계 최대의 입식타격기 단체 '글로리(GLORY)'의 미들급 챔피언이다. 실바와 마찬가지로 무에타이를 익혀 디아즈에겐 최적의 스파링 파트너다. 레빈은 디아즈의 동료인 조 실링이 연결시켜줬다. 실링은 지난해 6월 '글로리 미들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레빈에게 판정패했지만, 이것이 인연이 됐다.

같은 대회에서 캘빈 개스텔럼을 상대하는 타이론 우들리는 다른 체육관에 훈련캠프를 차린 경우다. 우들리는 세인트루이스에서 밀워키로 건너가 앤소니 페티스가 있는 루퍼스포츠에서 훈련한다. 레슬링이 강력한 개스텔럼을 대비해 2008년 올림픽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 파이터 아스크렌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물론 상대와 닮은 스파링 파트너가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지난 4일 UFC 182 존 존스 전을 앞두고 다니엘 코미어는 팀 동료인 락홀드에게 193cm 존스의 대역을 부탁했다. 미들급 락홀드는 라이트헤비급으로 체중까지 불려 코미어와 스파링했다. 9승 무패의 198cm 장신 리암 맥기어리도 훈련캠프로 초청했다. 레슬링 파트너론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카즈히무라트 가트살로프를 러시아에서 데리고 왔다. 전 벨라토르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킹 모도 함께했다. 그야말로 드림팀이었다.

▲ 다니엘 코미어(왼쪽) 존 존스 ⓒ Gettyimages
그러나 존스는 예상 밖에 있었다. 원거리에서 상대를 견제하는 능력도 뛰어났지만, 클린치 레슬링에서 코미어에게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코미어는 긴 리치를 뚫고 붙으면 레슬링에서 존스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존스가 코미어를 지치게 해 3라운드부터 주도권을 가져갔다. 결국 코미어는 5라운드 종료 후 판정패했다.

상대가 이전 경기와 180도 바뀐 전략을 들고 나올 경우도 스파링 파트너의 덕을 보지 못한다. 에릭 실바는 2013년 10월 김동현 전을 앞두고 왼손잡이 그래플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김동현과 신체조건이 비슷한 파트너와 훈련하고 있다. 스탠딩 타격전에서 자신이 있다. 그의 테이크다운 전략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격전을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동현이 들고 나온 카드는 '닥치고 돌진'이었다. 실바의 타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좀비처럼 전진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김동현이 테이크다운만 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실바는 허를 찔려 결국 2라운드 KO패했다.

최적의 대역과 만반의 준비를 했더라도 케이지 위에서는 돌발변수가 튀어나온다. 이때는 정신력과 임기응변, 세컨드의 대응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챔피언이 된다.

스파링 상대를 초청해 훈련캠프를 꾸리는 일은 수입이 충분한 톱클래스 파이터들이 아니면 쉽지 않다. 항공료와 체재비 등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UFC 182 마일스 쥬리 전을 앞둔 도널드 세로니는 파트너들을 초청하고 훈련하는 데 2만 달러(약 2200만원)를 지출했다고 밝혔다. "동쪽에 있는 파트너들을 데리고 오는 데 왕복 항공료 1000달러, 그들을 먹이고 수고료를 지불하니 약 2만 달러가 나갔다"고 말했다. UFC에서 최저 파이트머니는 8000달러다.

선수층이 두껍지 않은 우리나라 파이터들은 다른 방법을 쓴다. 주기적으로 다른 팀과 교류해 스파링 경험을 늘리고 있다. 일종의 품앗이다. 2013년 로드FC 파이터 김훈은 미노와맨 전을 앞두고 하체관절기의 고수인 유술가 전두광을 부산에서 서울로 불러 캠프를 차린 바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스파링 파트너 초청 사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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