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빛을 보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기들이 하나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기다린 세월만 8년. 이제야 롯데 자이언츠의 이인복(31)이라는 이름이 팬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2위 롯데의 4연승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는 2일 연락이 닿은 이인복은 이틀 전 경험한 짜릿했던 LG 트윈스와 맞대결, 이른바 ‘엘롯라시코’ 이야기부터 꺼냈다. 잠시 돌아간 곳은 4월 30일의 잠실구장이었다.
이인복은 “토요일 경기라 많은 팬들이 오실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관중석이 꽉 찬 느낌이더라. 기대하던 것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기분 좋게 던졌는데 이 점이 나쁘지 않은 투구로 이어진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이날 선발투수로 나온 이인복은 7이닝 동안 89구를 던지며 4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 호투하고 3-1 승리를 이끌었다.
데뷔 후 최고의 하루였다. 내야 땅볼을 유도하는 최고시속 145㎞의 투심 패스트볼을 앞세워 LG 타자들을 제압했다. 21개의 아웃카운트 중 13개가 땅볼일 정도로 자신의 장점을 한껏 살려 프로 무대에서 처음으로 7이닝을 책임졌다.
이인복은 “더 던지고 싶은 욕심은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홀가분하게 내려왔다. 무엇보다 범타를 잘 처리해준 야수들에게 고맙다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좋은 수비수들이 있어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2014년 데뷔한 이인복은 아직은 많은 야구팬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선수는 아니다. 그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마당쇠로 뛰었지만, 이렇다 할 임팩트를 많이 남기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2만3018명의 관중이 운집한 이날 잠실벌 엘롯라시코에서 역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뽐냈다.
무명의 세월을 거쳐 어느덧 당당한 선발투수로 자리매김한 이인복의 야구 이야기는 초등학교 3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매일 친구들끼리 야구를 하다가, 언젠가부터 정식으로 야구를 하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죠. 그렇게 1년 동안 매달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부로 가입하게 됐습니다.”
운명이었을까. 마침 이인복이 다니던 성남의 희망대초에는 엘리트 야구부가 있었다. 그래서 전학 갈 필요도 없이 희망대초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었다.
“그래도 어릴 때는 야구를 좀 했어요. 지금보다 훨씬 나았죠. 투수와 내야수를 번갈아 보다가 서울고에서 본격적으로 전업 투수가 됐습니다. 그런데 2학년 때 슬럼프가 찾아오더라고요.”
서울고 시절 투수 유망주로 자리매김하던 이인복은 2학년 들어 급격한 구위 하락 문제를 겪었다. 구속이 크게 떨어지면서 자신감을 잃었다. 결국 이는 프로 진출의 발목을 잡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된 뒤 연세대로 진학하게 됐다.
그러나 대학 진학은 야구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동기이자 원투펀치인 박상옥(31‧전 KIA 타이거즈)과 함께 많은 경기를 나가면서 경험을 쌓았고, 또 일생일대의 수술을 받으며 야구를 새로 바라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1학년 때 많은 공을 던졌어요. 그런데 그때 좀 무리가 됐는지 2학년 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는데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감독님의 배려로 3학년을 쉬다시피 하면서 차근차근 재활할 수 있었습니다.”
성공적으로 팔꿈치 재활을 마친 이인복은 4학년 때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다시 이름값을 높였다. 그리고 2014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 2차지명에서 2라운드라는 높은 순번으로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됐다.
물론 프로 입단 후에도 꽃길이 놓인 것은 아니었다. 오랜 인내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 사이, 대학 동기들이 먼저 이름을 알렸다. 같은 10학번의 이성곤(30‧한화 이글스)과 오윤석(30‧kt 위즈)이었다.
먼저 이순철의 아들로 잘 알려진 이성곤은 2차지명 3라운드로 입단한 두산 베어스에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2018년 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뒤 다시 2021년 6월 한화로 트레이드돼 점차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지난해 후반기부터 주전급 1루수로 도약하며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당당한 주축타자로 거듭났다.
다음 차례는 오윤석이었다. 육성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은 오윤석은 이인복과 마찬가지로 오랜 무명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 단행된 kt와 트레이드가 전환점이 됐다. 이적 후 백업 내야수를 맡아 1군에서 자리를 잡았고, 통합우승까지 돕는 알토란 자원이 됐다.
“사실 신인 드래프트에선 제가 순번이 가장 빨랐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이 먼저 빛을 보더라고요. 그래도 부러움은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잘 되면 저도 기쁘니까요. 나에게도 언젠가 차례가 오리라는 마음으로 다음을 준비했습니다.”
지난해까지 선발과 불펜을 오간 이인복은 올 시즌 풀타임 선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단 출발은 좋다. 6경기에서 3승 2패 평균자책점 2.70으로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
이인복은 끝으로 “이제 겨우 몇 경기가 지났을 뿐이다. 아직 5개월 가까운 페넌트레이스가 남아있다. 앞으로도 롯데의 믿음직한 투수로서 도움이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동기들이 먼저 이름을 알린 만큼 다음은 내 차례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 역시 롯데팬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선발로 자리 잡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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