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틀레틱클럽의 붉은 색 ⓒLFP
▲ 레알소시에다드의 푸른 색 ⓒLFP


[스포티비뉴스=빌바오, 산세바스티안(스페인), 한준 기자] 축구를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하는 이들이 있다. 같은 연고지에 이념이나 계층, 설립 배경이 달라 라이벌 관계가 된 두 팀의 경기는 ‘더비’로 불리며 상업화된 현 시대에도 축구의 ‘야수성’을 대표한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더비’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한국 시간으로 6일 새벽 4시에 킥오프할 예정인 아틀레틱클럽 빌바오와 레알소시에다드의 경기는 오로지 ‘축구’에 집중한다. 바스크 지역 내의 ‘자부심 싸움’이 더비의 핵심이다.

“두 팀 모두 바스크 선수들이 뛰고 있잖아요. 더비지만 단지 스포츠 이벤트일 뿐입니다. 축구를 통해 축제를 벌이는 것이죠.” (산티 우르키아가, 전 아틀레틱클럽 선수, 레사마 훈련장 매니저)

“여러분은 아주 특별한 더비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바스크 더비는 경찰이 필요 없습니다. 빨간색과 파란색 물결이 한데 어우러져서 경기를 즐깁니다. 축구가 왜 눈부신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서로 가진 열정의 대결입니다.” (로베르토 올라베, 레알소시에다드 기술이사)

바스크에서 축구가 갖는 의미는 크다. 지역 내 라이벌전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의 역할을 한다. 바스크기 ‘이쿠리냐’는 프랑코 독재 시절 금지된 깃발이었지만, 1976년 12월 바스크 더비에 양 팀 주장이 나란히 들고 등장하면서 1년 뒤 사용이 허가됐다. 1975년 프랑코가 죽은 뒤 바스크 선수들의 물밑 합의 끝에 이뤄낸 역사적인 사건이다. 두 팀의 우호 관계는 이 사건으로 더 끈끈해졌다.

▲ 바스크 더비 이틀 전에도 훈련장에서 지역 사회 연계 활동을 진행하는 아틀레틱클럽 ⓒLFP


◆ 빌바오의 자부심 “우리는 바스크의 꿈이다.”

스페인어와 전혀 다른 자체 언어를 사용하는 바스크 민족은 바르셀로나가 주도인 카탈루냐주와 마찬가지로 강한 지역 정체성과 분리주의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FC바르셀로나가 카탈루냐의 구심점이었다면, 바스크 지역에서는 지난 5월 해산한 과격 무장 단체 ETA와 더불어 오직 바스크 출신 선수만 기용하는 ‘순혈주의’ 정책을 가진 아틀레틱클럽이 중심에 있다. 

아틀레틱클럽이 선수를 키우는 레사마 훈련장과 신축한 산마메스 경기장에서 만난 구단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바스크의 대표라는 자부심으로 뭉쳐있었다. 아틀레틱클럽의 선수단 관리를 총괄하는 호세 마리 아모로투 기술이사는 보통의 클럽이 외부 선수를 물색하고 영입 협상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자체 육성 시스템을 보완, 발전하는 데 집중한다.

“우리는 기업이 아니다.”라고 말한 아모로투 기술이사는 “우리는 정책상 선수를 판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수한 선수를 팔면 그 선수를 대체할 선수를 영입할 수 없다. 떠난 선수가 생기고, 필요한 선수가 있다면 육성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서 써야 한다. 우리에게 이적 협상이란 없다. 바이아웃 금액을 내고 떠나는 것뿐”이라고 했다.

▲ 아틀레틱클럽의 운영 철학을 설명하는 호세 마리 아모로투 기술이사 ⓒLFP


1군 성인 팀뿐 아니라 연령별 유소년 팀과 2군 팀 운영과 연계를 총괄하는 아모로투 기술이사는 “단지 축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스크의 문화는 물론 인성, 심리, 사회관계 등 모든 면에서 가치를 교육한다”라고 했다. 아틀레틱클럽의 궁극의 가치는 결국 좋은 바스크 선수를 직접 육성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훈련 기법과 시스템, 인프라의 발전이 필수다.

아틀레틱클럽은 팀을 떠난 대표급 선수들이 남긴 돈을 다른 스타급 선수 영입에 그대로 쓰는 다른 구단과 달리 시설 보수 및 유소년 선수 육성에 투자하고 있다. 

아틀레틱클럽은 바스크 지역 안에서도 비스카야 지역을 대표한다. 빌바오는 비스카야주의 주도로 가장 번성하고 번화했다. 300만 인구가 안 되는 바스크 안에서 130만 인구를 자랑하는 비스크야주, 그 안에서 가장 큰 도시(인구 약 36만 명)다. 바스크 출신 선수만 기용한다는 독특한 정책으로 인해 바스크 전 지역에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의 꿈이 되었다. 

아틀레틱클럽의 소시오는 4만 5천여명 규모다. 삼촌이 아틀레틱클럽으로 뛰었다는 빌바오 지역 전문가 산티아고 씨는 “팬의 숫자는 다르지만 페냐(축구팬클럽)의 숫자로 따지면 아틀레틱클럽이 스페인 전역에 1,000개 이상으로 레알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보다 많다. 바스크 지역이 아닌 에스트라마두라에서는 지역 연고 팀보다 빌바오를 응원하고, 빌바오 사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아틀레틱클럽은 바스크 내에서 역사적으로나 규모 면에서 가장 큰 팀이다. 창단 120주년을 맞은 아틀레틱클럽은 라리가에서 가장 오래된 팀이며, 스페인에 축구가 수입된 지역이기도 하다. 이니고 마르티네스가 레알소시에다드에서 아틀레틱클럽으로 온 것처럼, 사실 바스크 지역에서 축구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의 꿈은 궁극적으로 아틀레틱클럽에서 뛰는 것”이라며 자부심을 표했다. 

▲ 레알소시에다드의 육성 시스템에 자부심을 표한 로베르토 올라베 기술이사 ⓒ한준 기자


◆ 소시에다드의 반격 “빌바오 순혈주의? 우리가 다 키웠어”

빌바오 다음으로 바스크 내에서 유명한 도시는 레알소시에다드의 연고지 산세바스티안이다.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 하계 올림픽과 연계된 관광 휴양지로 알려지면서다. 스페인 황실이 휴가를 보낸 곳으로 오래전부터 유명하다. 산세바스티안에 위치한 콘차 해변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여러 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유럽 최고의 휴양지가 된 덕분에 스페인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지역이 됐다.

산세바스티안의 땅값은 비싸지만, 규모와 역사 측면에서 레알소시에다드는 작은 팀이다. 산세바스티안의 인구는 19만여명. 이냐기 오테기 레알소시에다드 총괄 매니저는 “산세바스티안시나 우리 구단은 경기장을 직접 소유할 수 있는 재정 규모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도시를 대표하는 팀이 아니다. 아틀레틱클럽이 비스카야 지역을 대표한다면, 레알소시에다드는 바스크 지방 기푸스코아주의 주도다.

앙투안 그리즈만이 유소년 시절 만난 첫 번째 감독으로 유명한 루키 이리아르테 레알소시에다드 유소년 총괄 디렉터는 “우리 역시 기푸스코아주 선수들을 키우고 육성하는 데 집중한다. 오직 바스크 선수만 기용하는 정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비에타 훈련장에서 축구를 하는 85%의 선수들이 기푸스코아 지역 출신”이라고 했다.

루이스 아르코나다 레알소시에다드 언론담당관도 “프리에토와 아기레체가 은퇴하면서 비율이 줄기는 했지만 우리 역시 라리가에서 1군 팀에 자체 육성 선수 비율이 가장 높은 팀을 유지해왔다”고 했다. 

레알소시에다드의 선수 영입 및 관리를 총괄하는 올라베 기술이사는 “아틀레틱클럽의 현 1군 선수 중 35%가 우리가 키운 선수”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니고 마르티네스, 유리 베르치체, 다니 가르시아, 우나이 로페스, 미켈 발렌시아가, 아리츠 아두리스, 고르카 구루세타, 페루 놀라스코아인 등 8명은 레알소시에다드 유소년 팀에서 뛰었거나, 산세바스티안 지역 내 유소년 클럽인 안티구오코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마르켈 수사에타는 아틀레틱클럽에서 유소년 경력을 시작했지만 기푸스코아 태생 선수다.

▲ 아리츠 아두리스도 기푸스코아 출신 선수다 ⓒLFP


레알소시에다드는 아틀레틱클럽이 바스크 순혈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 선수 육성 성과는 더 작은 규모의 레알소시에다드가 크다고 자랑했다. 루키 유소년 디렉터는 “아니고 마르티네스는 비스카야 태생이었고, 유소년 시절 두 팀에서 모두 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니고의 부모가 레알소시에다드의 육성 시스템이 더 좋다고 판단해 우리 팀으로 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알소시에다드의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한 ‘레전드’ 알베르토 고리츠(1979년~1993년)는 정책이 변경되던 시기에 뛴 센터백이었다. 레알소시에다드의 1호 외국인 선수 존 알드리지를 “우리 팀의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라고 꼽은 고리츠는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고, 언어와 문화 문제도 있었지만 많은 선수들이 적응을 위해 노력했고, 결국 자리를 잡았고, 이들로 인해 우리 역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라며 개방주의가 준 긍정적 측면이 컸다고 했다. 

선수가 남긴 돈으로 새로운 산마메스 경기장을 지은 아틀레틱클럽과 마찬가지로, 레알소시에다드 역시 라리가의 변경된 TV 중계권료 배분 방식으로 번 돈을 선수 영입이 아니라 경기장 및 훈련장 보수와 육성 시스템 강화에 쓰고 있다. 아노에타 경기장도 시즌을 진행하면서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육상 트랙을 걷어내고 운동장과 관중석 사이를 좁히는 것은 물론 관련 설비와 외관을 최신으로 공사하고 있다.

오테기 총괄 매니저는 “팬들은 번 돈을 선수 영입에 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 좋은 환경을 팬들에 제공하는 데 쓰고 있다. 중계권 개별 판매로 일부 강팀이 수익을 독점해왔다. 달라진 조건 안에서는 우리도 자생력을 가질 희망이 있다.”라고 말했다. 환경적 요인으로 바스크 지역 안에서도 2인자로 밀렸던 레알소시에다드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 2018-19시즌 첫 바스크 더비가 열릴 산마메스 경기장 ⓒL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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