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돔에서 열린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를 앞두고 승전 의지를 다진 김인식 감독(왼쪽)과 선동열 투수 코치. 이 대회는 선동열 국가 대표 팀 전임 감독의 국제 대회 데뷔전이다. 해태 타이거즈 수석 코치와 선수로 인연을 맺은 두 야구인은 이제 KBO 총재 특보와 국가 대표 팀 전임 감독으로 한국 야구 재도약이라는 결코 쉽지 않은 숙제를 함께 풀어 나가야 한다. ⓒ 신명철 스포티비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12년 4월 3일 서울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2012년 시즌 프로 야구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8개 구단 감독이 저마다 입담을 자랑하는 가운데 선동열 KIA 타이거즈 감독은 자신의 많은 별명 가운데 ‘무등산 폭격기’가 가장 맘에 든다고 밝혔다.

이 기사를 보면서 글쓴이는 “아, 그렇구나”라며 어깨가 으쓱해졌다. 1985년 고려대를 졸업한 선동열이 그해 시즌 중반 광주 무등구장에서 처음 선발투수로 등판할 때 예고 기사에 ‘무등산 중(重)폭격기’라는 별명을 붙여 준 게 엊그제 일 같았다. 이후 몇 차례 기사에 ‘중폭격기’로 나가다 ‘중’이 떨어졌다. 광주일고~고려대 시절 백스톱 뒤에서 본 선동열의 투구 동작이 폭격기가 이륙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생각한 별명이었다.

그 무렵 프로 야구 기사에서는 선수들에게 별명을 붙이는 게 일종의 유행이었다. ‘너구리’ 장명부, ‘황금박쥐’ 김일융 같은. 아마추어 시절 선동열에게는 ‘멍게’라는 멋대가리 없는 별명이 있었다. 선동열의 고려대 선배인 김용희는 학창 시절 별명이 ‘꽁치’였는데 글쓴이는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에서 중심 타선을 이룬 김용철과 묶어 ‘YY포’라는 별명을 새로 지어 줬다.

'무등산 폭격기는'에서는 아류인 '무등산 정찰기'도 나왔다.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 김응룡 감독은, 요즘 용어인 '퀵 후크'를 애용(?)했는데 강만식을 정찰기로 띄운 뒤 폭격기인 선동열을 경기 중반 마운드에 올리는 식이었다.

시즌 평균자책점 0점대를 3차례나 기록하는 등 국내 리그를 압도한 선동열은 1995년 한일슈퍼게임에서 ‘무등산 폭격기’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때 일화.

도쿄돔에서 열린 1차전에서 0-0으로 맞선 9회 말 마운드에 오른 선동열은 1이닝 1안타 무실점 쾌투를 했다.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지면서도 "내 컨디션의 70% 정도"라고 큰소리를 쳤다. 4년 전 제1회 슈퍼게임에서 발목 부상을 이유로 등판을 회피했다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강성 발언이었다.

선동열의 큰소리는 그냥 큰소리가 아니었다.

선동열은 5-2로 이긴 2차전(요코하마 구장)에서는 8회 1사 1, 2루에 구원 등판해 1⅔이닝 동안 6타자를 상대로 무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1-1로 비긴 5차전(기후 나가라가와 구장)은 일본 팬들에게 선동열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 놓은 경기가 됐다.

9회 말 1-1 무승부를 지키기 위해 나선 선동열은 전해 센트럴리그 홈런왕인 다이호(주니치 드래건스)를 3구 삼진으로 처리하는 등 무안타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그 경기에서 선동열이 던진 6개의 직구 가운데 5개가 시속 150km를 넘었다. 그때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선동열은 도쿄돔에서 호투한 것을 포함해 그해 슈퍼게임에서 맹활약한 뒤 일본 리그 주니치 에 진출했고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번에는 '국보급'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도자로서 선동열은 선수 시절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수석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선동열은 2005년 김응룡 감독의 뒤를 이어 삼성 사령탑에 올라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2010년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렸지만 준우승에 그친 선동열은 삼성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후 2012년, 친정 팀인 KIA 타이거즈 감독을 맡았지만 3시즌 동안 한 차례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글쓴이는 2008년 3월 야구 전임 감독제 도입 문제가 거론됐을 때 *전임 감독에게 프로와 아마추어 혼성 대표 팀도 맡기고 *지도자 강습, 유소년 육성 관련 업무 등 야구 발전과 각급 대표 팀 경기력 향상을 위한 포괄적인 임무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으며 *세계 야구의 흐름을 파악하고 외국 주요 선수들의 경기력을 분석하는 업무를 진행할 감독 보좌역을 두는 문제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제언을 한 적이 있다.

KBO는 24일 국가 대표 팀 전임 감독 선임 소식을 알리면서 선동열 감독이 “오는 11월 도쿄에서 열리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을 시작으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 12,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팀 코리아'를 이끈다”고 밝혔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야구의 전반적인 수준 향상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그 막중한 책임을 110년이 넘는 한국 야구 사상 처음으로 전임 사령탑이 된 선동열 감독이 지게 됐다.

사족을 붙이면 야구인들이 '나무에 올려놓고 나뭇가지를 흔들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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