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축구협회는 28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징계중인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  ⓒ대한축구협회
▲ 대한축구협회는 28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고 징계중인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  ⓒ대한축구협회
▲ 대한축구협회는 2023 아시안컵 유치에 도전했지만, 카타르에 일방적으로 밀리며 실패했다.  ⓒ대한축구협회
▲ 대한축구협회는 2023 아시안컵 유치에 도전했지만, 카타르에 일방적으로 밀리며 실패했다.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부정적인 여론을 예상하고도 그런 것이면 뻔뻔하고 모르고 그랬다면 무지하다. 대한축구협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축구협회는 지난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이사회를 열고 축구인 1백 명에 대한 사면을 의결했다. 우루과이전을 시작 59분을 남기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우루과이전 결과에 보도가 묻히기를 바라는 축구협회의 '재치(?)'가 돋보이는 전략이었다. 

2011년 한국 축구를 흔든 승부 조작에 연루된 48명을 앞세워 나머지 52명까지 사면한다는 내용이었다. 승부 조작이 주는 강렬함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지도자. 심판 등 과거 징계를 받은 이들의 사면은 관심을 덜 받았다. 

축구협회의 명분에는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과 함께 한국 축구의 새 출발과 대통합이었다. 당연히 월드컵 16강 진출은 징계 대상자들이 아닌 후배들이 해낸 결과물이기에 말도 안 되는 논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새 출발과 대통합도 궁색하다. 언뜻 보기에는 정몽규 회장이 2021년 1월 3선에 성공한 뒤 모토로 내세운 '무빙 포워드(Moving Foward-앞으로 나아가자)!'에 맞춘, 일관성 있는 정책 집행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퇴보의 연속이다. 새 출발은 고사하고 정 회장이 운전하는 차량은 계속 낭떠러지를 향해 가는 모습이다. 

정 회장이 중용한 축구인 출신 행정가들의 모습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홍명보 전무(현 울산 현대 감독), 김판곤 전 국가대표 감독 선임위원장(현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감독) 체제에서는 적어도 쓴소리라는 것이 정 회장에게 닿았다. 이 역시 비선수 출신 내부 행정가들의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도 조율을 거쳐 실행된 정책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의 축구협회 행정은 그야말로 식물 상태다. 누구 하나 고언을 통해 정 회장을 바로 잡고 있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눈과 귀를 가려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들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유발한 여러 문제로도 머리가 아픈 상황에서 축구협회가 엇나가고 있으니 진퇴양난이다. 

이번 사면 건이 그렇다. 이사회에서 비상근 임원들은 사면안을 처음 봤다고 한다. 결국 '축구인'의 재기를 돕겠다는 의도인데 이미 시일이 한참 지났고 알아서 축구계에서 두발 뻗고 잘 지내는 인물들이 부지기수다. 

▲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영광은 어제 내린 눈이다. ⓒ대한축구협회
▲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영광은 어제 내린 눈이다. ⓒ대한축구협회

 

축구협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사회나 대의원총회가 거수기 노릇을 한지는 오래됐다. 거칠게 말하면 쌍팔년도 축구협회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적어도 이전에는 형식적이지만, 토론이라는 것이 있었다"라며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 대통합을 내세운 것이 의문이다. 과거 정몽준 회장 체제에서는 소위 '축구 야당' 세력이 존재했고 쓴소리가 자주 나왔다. 정몽규 회장이 부임한 뒤 이들을 잘 아우르며 갔다고는 하지만, 지역 축구계 사정은 많이 다르다. 정 회장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상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의식한 끼워 넣기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축구대표팀 응원단 붉은악마가 향후 A매치 보이콧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사회적 문제로 확산 기미가 보이자 축구협회는 그 어떤 기자회견이나 알림이 없다고 해놓고 29일 부랴부랴 공식 홈페이지에 문답 풀이 형식으로  '공정위원회 규정 제24조에 적시된 축구협회 회장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 행사에 따른 것이다. 다만, 자의적 사면권 행사가 되지 않도록, 사면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 축구협회 공정위원회 규정 제23조의 징계 감경 관련 규정을 기준으로 삼았다'라고 설명했다. 

규정 적용이야 축구협회가 할 일이지만, 대중적 파급력이 큰 결정을 단순히 규정 하나로 따져 정리한 것은 너무나 가벼운 처사였다. 비판이 쏟아지자 '사면 대상자가 지도자, 심판, 임원으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징계가 없었던 것처럼 모든 권리가 회복되는 복권'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발을 빼는 모습이었다.  

당장 상급 기관인 대한체육회는 이를 승인할 의사가 없다. 승부 조작이 체육계에서는 중대 범죄고 이를 승인해준다면 다른 종목에서도 같은 사례를 동일하게 의결. 혼탁을 용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다른 종목 프로스포츠 고위 관계자는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은 정말 이해 불능이다. 체육회 이상으로 국제적인 위상이 있고 예산도 막대하게 쓰지 않나. 결국 제 식구 살리기라는 뜻인데 실망스럽다. 꼭 반면교사로 삼겠다"라며 조롱했다.  

축구협회는 내, 외부를 아우를 구심점이 보이지 않은 지 오래됐다. 폭발하는 부정 여론에 31일 임시 이사회를 개최한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어떤 결정을 내려도 진정성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의사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이사회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갈수록 후퇴하는 한국 축구 행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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