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상암, 허윤수 기자 / 김성철 영상 기자] “거북이 같은 선수라 말하고 싶어요. 조금 느릴지라도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그런 선수거든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에 김민재(페네르바체)까지 합류하며 관심을 받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컨퍼런스리그(UECL)에 또 한 명의 한국인 선수가 묵묵히 전진하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오스트리아 LASK 린츠의 홍현석(22). 아직 많이 알려진 이름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꾸준히 써 내려가고 있다.
“저는 중앙 미드필더로 패스를 연결해주고 많이 뛰면서 수비 가담도 하는 역할이다. 현재 대표팀에서 황인범 선수와 같은 유형이다. 예전에는 플레이 스타일이 다비드 실바와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이젠 뛰는 자리도 비슷한 황인범 선수와 닮았다는 이야길 듣고 싶다.”
이렇게 팬들을 위한 자기소개를 마친 홍현석은 조금 더 세세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내 강점은 많은 활동량과 체력, 킬패스와 탈압박 능력이다. 반면 공격 포인트를 위한 슈팅, 마지막 패스의 집중력은 더 있으면 좋을 거 같다”라고 설명했다.
▶ 첫 유럽클럽대항전+데뷔골과 김민재, 손흥민
홍현석의 소속팀인 린츠는 지난 시즌 리그 4위를 차지해 UECL 무대로 향했다. 압도적이었다. 조별리그 6경기에서 5승 1무를 기록했다. 12골을 넣었고 실점은 단 1골. 조 1위로 토너먼트 무대에 올라 16강 상대를 기다리고 있다.
홍현석도 힘을 보탰다. 6경기 모두 출전해 1골 1도움을 올렸다. 꿈에 그리던 유럽클럽대항전. 그는 “처음 나가게 돼서 분위기가 궁금했다. 예전에는 이런 무대에서 뛰리라 생각 못 했다. 막상 뛰게 되니 영광스럽고 계속 기대됐다”라고 떠올렸다.
린츠 데뷔골도 UECL에서 나왔다. 알라쉬케르전에서는 선제 결승골을 뽑아냈다. 주발인 왼발이 아닌 오른발로 넣었다.
재미있던 점은 홍현석의 표정이었다. 소속팀에서의 첫 골을 넣었지만 무덤덤했다. 그는 “기뻐했는데 힘들어서 표정이 안 좋게 나왔다. 나 스스로도 ‘골 넣었는데 왜 이렇게 울상이지?’ 했던 것 같다. 뛰어가면서 좋아했는데 카메라에 안 잡혔던 거 같다”라며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여유롭게 UECL 16강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린츠. 아쉽게 토트넘은 탈락했지만, 페네르바체의 16강 가능성은 살아있다.
“박지성 선배님으로 인해 프리미어리그를 많이 봤다. 그래서 레스터 시티와 한번 붙어보고 싶다”라고 말한 홍현석은 “김민재 선배님도 만나보고 싶다.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수비수고 국가대표다”라며 맞대결과 함께 유니폼 교환도 꿈꿨다.
홍현석은 과거 인천공항에서 대표팀의 캡틴 손흥민을 마주했다. 하지만 워낙 큰 선수라 말을 걸지 못했다. 그는 “실제로 뵀는데 너무 멋있더라. 다음에 만나게 되면 용기를 내보겠다”라며 웃었다.
▶ 촉망받던 유망주에게 드리운 부상 그리고 유럽 진출
사실 홍현석은 학창 시절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2012년에는 차범근 축구 대상을 받는 등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유스의 산실 울산 현대고에서 오세훈, 김현우(이상 울산현대), 최준(부산아이파크)과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의의 부상이 시련을 안겼다. 홍현석은 대학교 진학이 여의치 않자 해외 무대를 엿봤다.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울산 입단 후 독일 3부리그 운터하힝으로 임대 이적했다.
해외 진출은 홍현석에게 많은 깨달음을 줬다. 또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했다.
“솔직히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다. 문화, 언어도 다르고 축구적으로도 잘 안 됐다. 고등학교 때는 나름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개개인으로 흩어지니 내 실력을 알게 됐다. 스스로 실망도 했지만 그냥 묵묵히 노력했다. 훈련이 답이었다.”
많은 도움도 받았다. 특히 독일에서 뛰는 정우영(22, 프라이부르크)의 존재는 큰 힘이었다. 그는 “운터하힝이 뮌헨 도시에 있다. (정) 우영이랑도 많이 만나고 부모님께서 집에도 초대해주셔서 매일 같이 음식도 많이 얻어먹었다. 정말 감사하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같은 팀에 있던 오인표(울산) 형에게 고민 상담도 많이 했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다”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1년 6개월간의 독일 생활을 마친 홍현석은 오스트리아 무대로 다시 도전을 떠났다. 축구 스타일과 언어가 비슷해 적응은 한결 수월했다. 그 결과 유니오스에서 유럽 진출 후 첫 공격 포인트를 비롯해 2골 9도움을 올리며 자신감을 쌓았다.
지난여름부터 합류한 린츠에서도 벌써 28경기 1골 7도움으로 완벽하게 자리를 잡기에 이르렀다. 그는 “시즌 초만 해도 이렇게 잘할 거라 상상 못 했다. 운도 많이 따랐던 거 같다. 솔직히 만족은 하지만 더 큰 욕심이 생겼다”라며 후반기에도 전진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부상 암초의 위기를 유럽 진출로 극복해낸 홍현석. 그가 유럽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무엇일까.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한 번도 유럽에 온 걸 후회한 적은 없다. 가장 크게 얻은 건 단점을 장점으로 바꾼 거다. 거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많이 뛰지 않는 게 단점이었는데 장점으로 바꿨다.”
▶ 지켜봤던 U-20 월드컵, 지켜볼 순 없는 아시안게임
비상에 성공한 홍현석은 또 다른 목표를 꿈꾸고 있다. 바로 태극 마크. 친구들이 나선 2019년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을 보며 각오를 다졌던 그였다.
“친구들이 활약하는 걸 보며 부럽기도 하고 자극도 많이 됐다. ‘나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던 시간과 계기였다.”
자연스레 올해 열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향한 의욕도 남다르다. “아시안게임을 너무 나가고 싶다. 자신도 있다”고 당차게 말한 홍현석은 “감독님 잘 지내시죠? 저 지켜봐 주세요. 진짜 이 세상 누구보다 열심히 뛸 수 있습니다”라며 황선홍 감독을 향해 어필했다.
10년 전 차범근 축구 대상을 받았던 홍현석이 그리는 10년 뒤 모습은 어떨까. 현재에 충실한 그답게 담담하게 답했다.
“(차범근 축구 대상 때는) 너무 어렸을 때라 미래를 그리진 않았다. 지금도 그런 성격은 아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느낌이다. 어떤 곳에서 뛸진 잘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오래 축구하고 싶다.”
끝으로 홍현석은 “2021년은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은 해였다. 너무 행복했다. 2022년 역시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고 목표는 아시안게임 출전이다. 욕심이겠지만 카타르 월드컵도 도전해보고 싶다”면서 “팬 여러분의 응원 감사드린다.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홍현석은 인터뷰 내내 ‘묵묵히’라는 말을 반복했다. 화려한 단어는 아니지만 그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였다. 홍현석은 오늘도 거북이처럼 묵묵히 도전하고 있다. 꾸준히 걸어간 걸음이 언젠간 목표로 하는 태극마크와 닿을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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