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단들은 경기장 밖보다는 경기장 내 사인의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SSG랜더스
▲ 구단들은 경기장 밖보다는 경기장 내 사인의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SSG랜더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수도권 구단 한 선수는 최근 퇴근길에 예전에는 없었던 조금 이상한 일을 겪었다. 한 팬이 사인 요청과 함께 다가왔다. 유니폼까지 들고 있었으니 진짜 팬이 맞았다. 그런데 손에는 동영상 녹화가 되는 듯한 휴대전화도 들려 있었다. 이 선수는 “사인은 해드렸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지방구단 한 관계자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원정길에 몇몇 팬이 선수단 숙소 로비에서 선수들에게 사인을 요청할 때 해당 장면을 녹화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물론 선수들의 일상을 휴대전화에 담고 싶은 팬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선수들은 압박감을 받는다고 했다. “만약 어떠한 이유로 사인을 하지 않으면 뭔가 그 장면이 커뮤니티 등에 돌아다닐 것 같았다”는 스트레스다.

출근길 및 퇴근길 사인 요청은 이제 일상이다. 경기 후 주차장에서 1시간씩 사인을 했다는 이야기가 미담처럼 퍼져 나온다. 물론 이제는 시대와 분위기가 많이 바뀐 느낌도 든다. 팬들도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사인을 요청하지는 않는다. 그저 퇴근길을 지켜보는 팬들도 상당수다. 또 사인 요청시 그냥 종이보다는 공과 유니폼을 준비하는 팬들도 많아졌다. 이러면 해주는 선수들도 기분이 좋다. 팬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도 있지만, 오히려 팬들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질서를 만드는 경우가 더 많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팬 없는 관중석을 실감한 선수들도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다. 프로야구 인기 저하가 자신들의 미래에 직격탄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여건이 되면 되도록 사인이나 사진 촬영을 해주고 퇴근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났다. 한 선수는 “퇴근길에 우리도 피곤하고 생각할 것이 많기는 하지만, 기다려주신 점이 고맙기도 하고 또 막상 돌아보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인파가 몰릴수록 부작용도 있다. 선수들과 구단들은 분명 부담을 가진다. 안전사고 위험성 때문이다. 보안요원들이 있기는 하지만 소수가 모든 현장을 통제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나쁜 마음을 품고 선수에게 접근하는 순간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사인을 하고 있을 때 간혹 섬뜩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하는 선수들이 꽤 많다. 

숙소까지 와서 사인을 요청하는 극성팬들의 경우에는 구단들끼리 ‘블랙리스트’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일부 팬들의 이야기”라면서도 “주로 선수들이 사인을 거부하기 어려운 아이들을 섭외해 대량으로 사인볼을 가져간다. 단순한 소장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선수들도 팬들이 숙소까지 찾아와 사인을 요청하면 아무래도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공인으로 인정되는 사회적 분위기다. 그래서 음주사고 등 반사회적 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처벌이 일반 기업보다는 대체로 더 세다. 다만 공인으로서의 무대를 마치고, 잠시 사인으로 돌아가는 경계가 애매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경기장에서 모든 플레이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팬서비스에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하다. 반대로 그 경계에 있는 출근길과 퇴근길에서의 의무는 명확하게 정해진 게 없다.

▲ 경기 전 지정된 시간에 팬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는 추신수 ⓒSSG랜더스
▲ 경기 전 지정된 시간에 팬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고 있는 추신수 ⓒSSG랜더스

사인을 받기 위한 팬들이 선수들의 퇴근길에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인을 받고 싶은데, 마땅한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의 사인 행사는 분명 한정되어 있다.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인원도 제한되어 있다. 이걸 팬 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야구계에서는 “경기장 내에서 사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대폭 확대하고, 출‧퇴근길은 제한하자”는 이야기가 부쩍 나온다. 

그렇게 하려면 이벤트뿐만 아니라 훈련부터 경기 종료까지 모든 시간에 곳곳이 기회가 배치되어야 한다. 최근 SSG의 경우 ‘프리사인 이벤트’ 등으로 선수들이 훈련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복귀할 때, 그리고 경기 시작 전에 잠시 여유가 있을 때, 그리고 경기 종료 후 시간을 내 팬들에게 사인을 해준다. 그 시간에는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팬들이 인지하고 있기에 해당 시간대와 좌석이 인기라는 후문도 나온다. 

팬이 없는 프로스포츠는 존재할 수 없지만, 또 선수와 스타가 없는 프로스포츠 또한 존재할 수 없다. 팬서비스는 계속해서 확대하는 것이 산업의 발전에 옳지만, 그 공간은 경기장과 사전에 기획된 자리가 되어야 바람직하다. 그래야 안전하고 쾌적하게 발전할 수 있다. 당분간은 현행의 상황이 계속 이어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팬들과 선수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지속 가능한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다. 이제는 서서히 그 생각을 모아가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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