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웅은 빠르지 않은 구속으로도 최고 성적을 기록 중이다 ⓒ곽혜미 기자
▲ 김재웅은 빠르지 않은 구속으로도 최고 성적을 기록 중이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마무리 투수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보통 ‘빠른 공’이다. 한가운데 승부를 알고도 치지 못하는 강력한 구위는 탈삼진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마무리 투수들의 필수품으로 여긴다. 실제 KBO리그 구단들도 가장 구위가 좋은 불펜투수를 마무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와 같은 제구력을 장점으로 클로저 자리에 오른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제는 시속 150㎞를 곧잘 볼 수 있는 KBO리그에서는 그 존재감이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구속이 느리면 콘택트 확률이 높고, 급박한 상황이 잦은 마무리 투수로서 ‘운’의 영역의 기대는 이벤트가 많아질수록 불안해진다. 타자들로서도 6~8회에 상대했던 불펜투수의 공보다 느린 공에는 상대적으로 더 잘 대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키움의 마무리를 맡은 좌완 김재웅(24)의 성공 여부가 관심을 모은다. 팀의 붙박이 마무리였던 조상우가 입대해 마무리 자리에 공백이 생긴 키움은 사실상의 집단 마무리 체제로 시즌을 이끌어왔다. 올 시즌 한 차례 이상 세이브를 기록한 선수만 5명이고, 5세이브 이상도 세 명(문성현 이승호 김태훈)이다. 상황에 따라 투수를 기용하는 키움의 전략은 전반기까지는 비교적 효율적으로 돌아가며 팀의 고공 비행을 이끌었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불펜에 다소간 문제가 드러나는 가운데, 결국 홍원기 키움 감독은 중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김재웅을 클로저로 낙점했다. 김재웅은 올해 48경기에서 27홀드를 수확하며 이 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9회가 불안해지자 현시점 불펜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던 선수에게 결국은 마무리를 맡긴 것이다.

김재웅은 전형적인 마무리 투수의 이미지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는 선수다. 뛰어난 제구력을 자랑하기는 하지만 물리적으로 공이 빠른 선수는 아니다. 김재웅의 올해 포심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0.7㎞ 수준이다. 콘택트 비율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정우람(한화)이 마무리 자리를 내놓은 이후 리그에서 가장 구속이 느린 마무리 투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패스트볼을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 느린 구속에도 불구하고 힘이 있고, 그래서 패스트볼 가치가 가장 높은 불펜투수 중 하나로 뽑힌다. 김재웅의 패스트볼을 상대하는 타자들은 “공이 체감적으로 더 빠르고, 힘이 있어 파울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전체적으로 까다로운 폼은 물론 수직 무브먼트와 분당회전수(RPM)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KBO리그 9개 구단에 트래킹 데이터를 제공하는 ‘트랙맨’의 집계(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결과값 제외)에 따르면, 김재웅의 올해 패스트볼 수직 무브먼트는 무려 61.8㎝에 이른다. 이는 250구 이상을 기준으로 했을 때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이다. 패스트볼 RPM 또한 2365회로 250구 이상을 던진 리그 좌완 투수 중 5위다. 

투수의 손에서 떠난 공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점점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김재웅의 패스트볼은 리그에서 가장 이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 날아가고, 이 때문에 타자들이 공의 밑을 때리거나 혹은 방망이가 공의 아래를 지나가는 헛스윙이 더러 생긴다.

중간에서 빼어난 투구를 한 투수가 마무리로 승격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마무리에서 자리를 잡느냐는 또 별개의 문제다. 8회에는 잘 던지던 투수가, 9회에는 흔들리는 경우도 많다. 아무래도 심리적인 영향이 크다. 이대형 ‘스포츠타임 베이스볼’ 위원은 “9회에는 타자들의 집중력도 강해진다. 반대로 마무리는 뒤가 없다는 압박감을 받는다”고 했다. 야구는 멘탈의 싸움이고, 9회는 그것이 가장 강하게 충돌하는 시기다.

김재웅도 마무리로 간 뒤에는 두 경기에서 모두 세이브를 거뒀으나 모두 실점하기도 했다. 0.99였던 시즌 평균자책점은 두 경기만에 1.51로 높아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기가 뒤집히지는 않고 승리를 지켰다. 마무리 보직에 다소 긴장을 했을 법한 김재웅으로서는 한숨을 덜고 차분하게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리그 최저속 마무리가 세간의 시선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키움의 한 시즌 농사도 여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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