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피겨, 2022~2023 시즌, ISU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 2개-주니어 선수권대회 은메달 2개 획득
- 차준환-이해인, 세계적인 스케이터로 급부상…아이스댄스 임해나-취안예 성장도 성과
- 국가대표 및 유망주 성장을 위한 지원 절실…차기 올림픽 준비 지금부터 시작해야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스케이팅 세계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이 김연아(33) 이후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차준환(22, 고려대)은 한국 최초로 이 대회 남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싱글에 나선 이해인(18, 세화여고)도 은메달을 따내며 2013년 김연아 우승 이후 10년 만에 시상대에 올랐다.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 있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피겨는 값진 은메달 2개를 거머쥐었다. 이는 금메달 3개(남녀 싱글, 페어)를 따낸 개최국 일본과 금메달 1개(아이스댄스) 은메달 1개(페어) 동메달 1개(남자 싱글)를 획득한 미국 다음으로 좋은 성적이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 피겨 스케이팅은 김연아 단 한 명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어느덧 김연아가 남긴 유산은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김연아가 각종 대회에서 선전하는 경기를 보며 자란 선수들은 국제 대회 시상대에 섰다.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열린 2021~2022 시즌, 한국 피겨는 김연아 이후 가장 좋은 성적표를 받았다.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한 차준환은 남자 싱글 5위에 올랐고 유영(19)은 여자 싱글 6위를 차지했다. 또한 김예림(20, 단국대)이 여자 싱글 9위에 오르며 두 명의 선수가 '톱10'을 달성했다.
차준환은 올림픽에 앞서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또한 신지아(15, 영동중)는 지난해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2~2023 시즌 한국 피겨는 지난 시즌의 성적을 훌쩍 뛰어 넘었다. 가장 중요한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 2개가 나왔다. 또한 지난달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신지아가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따냈고 임해나(19)-취안예(22) 조는 아이스댄스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시즌 ISU 시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를 합작했다.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는 금메달 2개, 은메달 7개, 동메달 5개를 쓸어 담았다. 메달 개수는 총 14개로 20개의 메달을 휩쓴 일본 다음으로 많았다.
이러한 지표를 봤을 때 한국 피겨는 역대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특히 주니어 시리즈의 결과물은 미래를 한층 밝게 했다.
그러나 진정한 피겨 강국으로 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 시즌 피겨 스케이팅 최강국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문제로 ISU에 징계를 받았다. 결국 러시아 선수들은 ISU가 주관하는 대회는 물론 각종 국제 무대에 서지 못했다.
러시아에 밀렸던 일본은 '피겨 최강국'으로 올라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또한 한국도 이러한 기회를 잘 살려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현재 상황을 볼 때 차기 2023~2024 시즌도 러시아 선수들의 국제 대회 출전은 불투명하다. 그러나 이들은 언젠가는 빙판에 복귀하고 현재 피겨 스케이팅의 판도는 다시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
3년 뒤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을 향한 여정은 이미 시작됐다.
2026년 동계 올림픽 메달, 꿈이 아닌 현실…문제는 선수 지원과 환경 발전
현재 한국 피겨의 잠재력은 매우 고무적이다. 여자 싱글의 경우 김예림이 20세가 된 이후에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비록 가장 중요한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8위로 부진했지만 이번 시즌 총 8개의 국제 대회에 나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냈다.
베이징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해인의 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피겨 선수의 최종 목표인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심기일전해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김채연(17, 수리고)도 처음 출전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위를 차지했다. 앞으로 4회전 점프와 트리플 악셀을 시도할 가능성도 농후해 국제 대회 경쟁력은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니어에도 뛰어난 기량을 갖춘 기대주들이 즐비하다. 신지아는 2년 연속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김유재(14, 평촌중)는 한국 여자 선수로는 유영 다음으로 실전 경기에서 트리플 악셀에 성공했다. 그는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올랐고 또 한 명의 기대주인 권민솔(14, 목동중)은 5위를 차지했다.
남자 싱글은 열악한 선수층임에도 기대주들이 속속 등장했다. 김현겸(17, 한광고)은 처음 출전한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위에 올랐다. 서민규(15, 경신중)는 지난해 10월 ISU 주니어 그랑프리 6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여기에 국내 선수로는 최연소로 실전 경기에서 트리플 악셀에 성공했고 4회전 점프도 시도한 최하빈(14, 미양중)도 눈여겨볼 유망주다.
아이스댄스 임해나-취안예 조와 페어 조혜진(18)-스티븐 애드콕(28, 캐나다) 조도 고무적이다. 이들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은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항전인 팀 트로피 출전도 가능해졌다.
문제는 이들이 성장해나갈 밑바탕을 이루는 시스템이다. 피겨 스케이팅의 특징은 후원을 얻기 전까지 '투자'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일정한 고정 수입 없이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가기 때문에 꿈을 접은 이들도 적지 않다.
김연아가 활약했던 시절부터 피겨 유망주들의 지원 문제는 제기됐다. 그러나 여러 현안의 마찰과 현실적인 문제로 전문 빙상장 건립 등 여러 사항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는 어떨까.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트리플 악셀에 성공한 이토 미도리의 등장 이후 일본의 '피겨 붐'은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과거 북미와 러시아와 비교해 아이스링크 숫자는 적었지만 이후 선수층이 풍부해지며 유망주 발굴에 나섰다. 재능 있는 선수들을 찾는 콘테스트를 열어 육성할 선수를 찾은 뒤 합숙 훈련해 국제 대회 경쟁력을 높였다.
민영 기업과 지역 단체의 후원도 이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고 오늘 날의 '피겨 강국'을 완성했다.
여기에 자국에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훈련지를 제공하며 일본 선수들에게 이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많은 국제 대회 유치도 자국 선수들의 큰 대회 경험에 도움이 됐다.
선수 생명이 긴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하게 뒷바라지 해주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와 스폰서가 있기 때문이다. 하뉴 유즈루(29, 일본)는 지난해 28살의 나이에 자신의 세 번째 올림픽(2022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다. 과거 일본 남자 피겨의 간판으로 활약했던 다카하시 다이스케(37, 일본)는 아이스댄스로 전향해 37세인 올해까지 현역 선수로 뛰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15년부터 KB금융이 '유소년 유망주 후원을 통한 대한민국 피겨스케이팅 발전'을 목표로 유망주 10명을 선정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아무런 지원이 없었던 과거와 비교해 형편은 조금이나마 나아졌지만 김연아 시절부터 지속된 '자비 투자'는 여전하다.
태극 마크를 단 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비로소 후원을 받을 기회가 생긴다. 이 단계에 오르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자비로 대부분을 해결하는 이들이 많다. 또한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실업 팀이 없기에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갈 동력도 잃는다. 남자 선수들은 졸업 후 생계 및 군대 문제로 대부분 은퇴한다.
물론 한국보다 훨씬 저변이 넓고 선수층이 두꺼운 일본과 비교하기에는 무리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해결이 가능한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일은 절실하다.
지난해 8월, 피겨 국가대표 선수들은 처음으로 충북 진천선수촌에 한 달간 합숙 훈련했다. 개인 종목인 피겨 스케이팅은 지상 훈련 및 웨에트 트레이닝 그리고 물리 치료와 안무 연습 등을 위해 적지 않은 거리를 이동한다.
피겨 국가대표들은 선수들을 위한 각종 시설이 옹기종기 모인 선수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김예림은 "진천선수촌 합숙 훈련은 의미가 컸고 느끼는 점도 많았다. 합숙은 처음이었는데 그 기간동안 정말 좋았고 배운 점도 많았다"고 말했다.
남자 싱글 이시형(23, 고려대)도 "한 달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했는데 저에게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종목 특성상 개인 훈련이 많았다. 그런데 동료들과 협동심과 팀 워크도 배웠다"고 덧붙였다.
진천선수촌 합숙을 체험한 이들은 이동 거리가 짧고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실제로 지난 여름 합숙 훈련을 한 국가대표 몇몇 선수들은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22~2023 시즌을 되돌아 볼 때, 이번 여름, 진천선수촌 합숙 훈련을 확장해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새로운 방안이다.
또한 세계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어릴 때부터 장기적으로 선수를 키우는 육성 방법도 절실하다. 국제 대회 유치로 많은 국내 선수들이 현재 피겨 스케이팅의 흐름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의 장'을 만들어주는 방법도 필요하다.
이번 시즌 한국 피겨가 이룬 성과는 매우 의미가 크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해 제자리 걸음에 머무른다면 3년 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 메달을 향한 꿈은 신기루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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