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4월 9일 수원 성균관대 운동장에서 열린 SK와 kt의 퓨처스리그 경기. ⓒkt 위즈
[스포티비뉴스=고봉준 기자] 출발은 힘찼다. 갖춘 것은 많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밥 먹듯이 꼴찌로 떨어졌다. 갈수록 형들과의 격차는 크게 느껴졌고, 어느새 자욱한 패배 의식이 막내 구단을 감쌌다. 그렇게 걸어온 8년이라는 시간. 마침내 이들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 포효했다.

KBO리그 ‘제10구단’ kt 위즈가 사상 처음으로 페넌트레이스 정상을 밟았다. kt는 10월 31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1위 결정전’에서 1-0 승리를 거두고 올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많은 선수들은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지난해 가을야구 진출 후 흘린 눈물과는 또 다른 느낌. 이들이 울음을 터뜨린 이유를 알기 위해선 8년 전 그때로 잠시 되돌아가야 한다.

▲ kt 선수들이 10월 31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 1위 결정전에서 1-0 승리를 거둔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구, 곽혜미 기자
프로야구 붐이 한창이던 2010년대 초반. 먼저 NC 다이노스가 창원을 연고지로 ‘제9구단’ 창단을 선포하자 뒤이어 짝수 구단 운영을 위해서 신생 구단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KBO리그 10번째 구단 탄생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됐다.

유치 의사를 밝힌 기업은 두 곳이었다. kt가 수원을 연고지로 기치를 내걸었고, 부영그룹이 전주시와 군산시, 익산시 등을 공동 연고지로 하는 전북 연합군을 구성하면서 맞불을 놓았다.

승리를 거둔 쪽은 kt였다. 2013년 1월 KBO 이사회와 구단주 총회가 kt를 10구단 운영 주체로 의결하면서 본격적인 창단 작업이 시작됐다.

초대 사령탑은 조범현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이 맡았다. 2011년을 끝으로 KIA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삼성 포수 인스트럭터를 맡고 있던 조 감독은 8월 kt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이어 KBO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선수들을 선발한 뒤 10월 남해스포츠파크에서 역사적인 첫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10번째 구단으로 당차게 발은 내디뎠지만,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단 마땅한 홈구장이 없어서 수원 성균관대 운동장에서 훈련을 진행해야 했다. 이때를 조 감독은 “명색이 프로인데 선수들이 흙바닥에서 뒹굴었다. 또, 식사할 곳도 없어서 밖에서 밥을 먹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떠올렸다.

그래도 모든 것은 낭만이었다. 20대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던 kt는 이곳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주어진 환경이 여의치 않아도, 내년부터 밟을 1군 그라운드를 생각하며 모든 어려움을 참아냈다.

kt는 2014년 4월 8일 성균관대에서 SK 와이번스와 퓨처스리그 개막전을 치렀다. 제대로 된 관중석도 없었지만, 100명이 넘는 창단팬들이 출발을 함께했다. 결과는 2-14 대패. 그래도 kt는 2014년 퓨처스리그 북부리그에서 3위(41승10무37패)를 기록하면서 1군 도약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 2015년 3월 31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의 첫 1군 홈 개막전을 맞아 삼성 류중일 감독(왼쪽)과 kt 조범현 감독(오른쪽)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kt 위즈
2015년 KBO리그로 입성한 kt. 야구계의 모든 시선은 막내 구단의 첫 번째 승리로 쏠렸다. 그런데 kt는 개막과 함께 11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1군의 벽은 높았고, kt의 전력은 약했다.

개막 후 정확히 2주가 지난 4월 11일 목동구장. kt는 이날 넥센 히어로즈를 5-3으로 누르고 감격스러운 1승을 맛봤다. 이들에겐 한국시리즈 우승만큼이나 벅찼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감격은 여기까지였다. kt는 이후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5년을 시작으로 2016년, 2017년까지 연달아 꼴찌를 기록했다. 이 사이 초대 사령탑인 조범현 감독이 물러나고 김진욱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2018년 성적 역시 9위로 좋지 않았다.

이렇게 kt가 어려움을 겪는 동안, 선수단의 구성도 많이 바뀌었다. 창단 멤버들이 하나둘 물러났고, 강백호와 배제성, 소형준, 이대은 등 신인 드래프트나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한 이들이 주축으로 떠올랐다. 물론 심우준이나 김재윤, 주권처럼 2015년 1군 진입부터 함께한 젊은 선수들의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2019년 이강철 감독이 부임한 kt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반기를 6위로 마치며 바람을 일으키더니, 후반기 호성적을 이어가면서 사상 처음으로 5할 승률(71승2무71패)을 기록했다. 순위 역시 6위로 창단 후 가장 높았다.

그리고 2020년. kt는 마침내 가을야구의 향기를 맡았다.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부터 소형준, 배제성, 윌리엄 쿠에바스가 모두 10승 고지를 밟은 가운데 김재윤이 21세이, 주권이 31홀드를 수확해 마운드를 지켰고, 멜 로하스 주니어와 강백호, 배정대 등이 타선에서 맹활약하며 페넌트레이스를 2위로 마쳤다.

▲ kt 이강철 감독이 10월 31일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다. ⓒ대구, 곽혜미 기자
플레이오프로 직행한 kt는 포스트시즌 경험이 많은 두산 베어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선수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지만, 이는 오히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올 시즌 초반부터 고공행진하더니 최후의 1위 결정전에서 삼성을 꺾고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했다. 흙바닥 운동장에서 시작해 우승 비단길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kt다.

이날 경기 후 이강철 감독은 “구단과 프런트, 팬 그리고 선수가 함께 이룩한 성과다”며 기뻐했다. 이어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로 진출했다. 잘 준비해서 새로운 구단의 역사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사령탑의 선언대로 막내 구단의 여정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kt는 14일부터 대망의 한국시리즈를 시작한다. 남은 시간은 약 2주 정도. 과연 막내 구단의 질주는 통합우승이라는 대업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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