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야구가 희망이다 ③라온고등학교
- SPOTV 고교야구 시리즈, 야구공 지원 프로젝트
- 그늘조차 없는 휴식공간…맨땅에서 식사하는 선수들
- 작년 대통령배 준우승…창단 첫 결승 진출 ‘드라마’
- 선수 45명으로 대폭 증가…평택시는 10억 추경예산
- 라온고 “새 야구공으로 훈련해서 올핸 우승할래요”
[스포티비뉴스=평택, 이재국 기자] 2015년 7월에 야구부를 창단해 2016년부터 대회에 참가한 무명팀. 어지간한 야구팬들도 “라온고가 어디에 있는 학교냐”고 물을 정도로 사실상 야구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그랬던 라온고가 지난해 제55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내로라하는 명문팀들을 모조리 꺾어나가며 파란을 일으켰다. 창단 후 처음 결승 무대까지 진출하자 모두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라온’은 ‘즐거운’을 뜻하는 순우리말. 원래 교명은 ‘송탄제일고등학교’였지만, '제일고(第一高)'가 일제시대에 지어진 이름이라는 지적에 따라 2017년 교명을 ‘라온고’로 바꿨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즐거운 야구’는 경직됐던 한국 고교야구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고교야구 중계권사인 SPOTV는 고교야구를 살리고 붐을 확산하기 위해 올 시즌에 앞서 '고교야구가 희망이다' 코너를 신설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도전을 통해 꿈과 희망을 만들고 감동의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는 학교를 선정해 야구공(공인구)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서울컨벤션고, 제주고에 이어 야구공을 선물 받은 세 번째 주인공은 ‘즐거운 야구’로 기적을 빚어내고 있는 라온고다.
◆ 무명의 팀에서 평택시의 자랑거리로
평택항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하늘색 유니폼. 가슴팍에는 ‘라온고교’가, 오른쪽 소매에는 ‘평택시’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작은 학교. 처음엔 평택시민들조차 “평택에도 야구하는 고등학교가 있었나”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지난해 대통령배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거대한 팀들을 하나씩 연파해 나가자 평택시 전체가 들썩거렸다.
평택시민들은 라온고를 응원하기 시작했고, 결승전 때는 정장선 평택시장과 시의원, 체육관계자, 평택교육청장 등이 대회가 열린 공주시립박찬호야구장까지 직접 찾아가 선수단을 격려하기도 했다. 야구부 창단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라온고는 힘든 여건 속에서 지난해 기적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교 안에는 정식 야구장이 없다. 운동장 규격이 작아 야구부는 이곳에서 간단한 내야 펑고 훈련 정도만 받을 수 있다.
훈련다운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진위천에 있는 진위야구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사회인야구를 하기에도 열악한 환경. 주변에 나무 한 그루조차 없어 여름이면 뙤약볕 아래에서 훈련을 하고 휴식할 공간도 마땅찮다. 펜스는 검은색 비닐 차양막으로 대충 둘러져 있다. 샤워시설은커녕 옷을 갈아입을 곳도, 편하게 식사할 공간도 없다. 선수들은 바람만 조금 불어도 먼지 풀풀 나는 맨땅에 주저앉아 밥을 먹곤 했다.
◆ 평택시 10억원 추경예산 편성…훈련 환경 대대적 변신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라온고 선수들이 즐겁게 훈련하며 전국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킨 사실이 SPOTV 중계를 통해 알려지자, 평택시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대회 직후 평택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라온고까지 찾아와 “평택시를 빛내줘 감사하다”며 필요한 부분을 묻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평택시는 3월부터 추경예산을 편성해 진위야구장 시설 개선에 1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고교 야구부를 위해 이와 같이 통 큰 지원을 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일. 그만큼 라온고가 평택시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자랑거리가 됐다는 의미다.
우선 진위야구장이 대대적인 변신에 돌입한다. 맨땅은 인조잔디로 탈바꿈하고, 라이트 시설과 식사와 샤워를 할 수 있는 공간 등도 갖춰 훈련 환경을 대폭 개선할 예정이다.
라온고 강봉수 감독은 “요즘은 고교 선수들이 학교 정규 수업을 다 마치고 훈련을 시작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오후 4시반부터 해질녘까지만 훈련할 수 있었다. 인조잔디가 깔리고 라이트 시설까지 들어서면 저녁에도 훈련을 할 수 있다”면서 “선수들이 맨땅에 쭈그리고 앉아 식사를 할 때면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평택시에서 조금만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해주시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마음으로 크게 지원을 해주신다니 정말 감사하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 라온고와 강봉수 감독이 지향하는 ‘즐거운 야구’
학교도 축제분위기다. 평소 야구를 좋아해서 라온고 야구부를 창단하기로 한 이규상 이사장도 야구가 가져다주는 효과를 실감한 뒤 최대한 후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재유 교장선생님과 구대영 교감선생님 역시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재유 교장선생님은 “야구 하나가 학교에 큰 즐거움을 주고 우리학교를 제대로 홍보했다. 야구를 통해 많은 분들이 라온고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됐다”면서 “우리 일반 학생들이나 선생님들도 작년에 TV 중계를 보면서 하나가 돼 응원을 했다. 어디를 가서라도 라온고 야구부가 큰 자랑거리가 됐다”며 흐뭇해했다.
강봉수(51) 감독은 LG와 한화에서 좌완투수로 활약하던 현역 시절에도 ‘개그맨’으로 통했다. 라온고 야구부 창단 때부터 코치와 감독으로 함께하고 있는 그는 학교 이름에 걸맞게 ‘즐거운 야구’를 지도 철학으로 삼고 있다. 실책을 했다고 경직되는 선수, 훈련이 힘들다고 인상을 쓰는 선수는 일부러 웃는 연습부터 시키고 그라운드에 서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학창 시절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야구를 했잖아요.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요. 훈련할 때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힘들어서 인상 쓰고 있으면 다른 선수들한테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선수들에겐 차라리 그날 쉬고 다음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나와서 훈련하자고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즐거운 표정으로 임해야 훈련 효율도 높아지고 즐겁게 플레이를 하거든요.”
실제로 훈련하는 내내 라온고 선수들의 즐거운 함성이 야구장에 메아리친다. 그러다보니 움직임도 박진감이 넘친다.
◆ “올해는 우승하는 장면이 TV 중계에”
경기도에는 수원 유신고, 분당 야탑고 등이 야구 명문고로 자리 잡고 있어 창단 초기에는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여기저기서 긁어모으고 전학생을 받아 전체 35명 선으로 팀을 구성했다.
지난해 결승 진출 효과일까. 올해는 1학년만 18명을 뽑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에 총 45명의 선수를 등록했다. 실제로는 이번에 신입생만 30여 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강 감독은 “선수가 넘쳐나도 훈련이나 출전 등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오히려 거절하느라 힘들었다”며 웃었다.
그동안 다소 소외되고 주목받지 못하던 라온고 선수들은 갈수록 자신감이 붙고 있다. 주변의 관심과 지원이 이어지자 한껏 고무됐다.
주장인 3학년 외야수 권동혁은 “그렇잖아도 공을 오래 써서 새 공이 필요했는데 때마침 이렇게 새 야구공을 선물받게 돼 기쁘다”면서 “작년에 다들 큰 경기 경험을 많이 했다. 당시 2학년들이 주축으로 많이 뛰었는데 이제 친구들이 3학년이 됐다. 새 야구공으로 즐겁게 준비를 해서 올해는 꼭 우승하는 장면이 SPOTV 중계에 나오도록 해보겠다. 라온고가 야구 명문고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며 더 큰 꿈과 희망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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